2013년 1월 26일 토요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보여주면 믿겠다!”

무신론자 혹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라 하면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을 보고 

믿음을 갖는 경우는 없습니다.

 삼라만상을 보고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이도 있고, 

성경의 무오성과 완전함에 

하나님을 믿게 된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보지 않고도 이미 

하나님의 존재를 믿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도마에게 

고난의 상처를 만져보게 하시고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에 대해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증거’라고 

표현했습니다. 

실제, 눈으로 보는 것은 ‘확인’일 뿐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영혼





사람과 영혼


나는 누구인가 !!  나는 무엇인가 !!

인류 최대의 의문, 

수많은 철학자들을 탄생시킨 질문, 

인간의 근원적이고 존재론적인 

문제에 답을 던지다.




샘이 죽은 후 몰리는 혼자였다. 

잦아지는 그리움에 슬픔이 복받쳐도 위로해줄 사람이 없었다. 

그와 함께했던 소파에 앉아 샘을 그리워하던 몰리에게 한 사람이 찾아왔다. 

오다메였다. 그리고 몰리는 깨닫게 된다.

 샘이 영혼의 상태로 자신의 주위를 맴돌고 있음을. 


1990년, 전 세계적으로 대히트를 쳤던 영화 ‘사랑과 영혼(Ghost)’의 한 장면이다.

 전반부의 안타까움이 절정에 다다를 즈음 이 장면에 이어 몰리는 

결국 샘을 만나게 된다. 오다메 속에 들어온 샘의 영혼과의 재회는 

보는 이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영화 '사랑과 영혼'의 한 장면 



하지만 우리는 이 영화에서 차마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날 수 없었던 

샘의 영혼이 던지는 메시지보다 ‘사람에게 과연 영혼이라는 것이 존재할까?’라는

 의문을 더 가지게 된다. 

과연 영혼이라는 것은 존재할까?

영화에서 샘의 영혼은 몸을 벗어나 활동하며, 눈으로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존재로 설명된다. 

물론 영화는 픽션(fiction)이다. 

그러나 영화의 소재인 영혼은 논픽션(nonfiction)이다.


사람의 영혼에 대한 문제는 종교를 떠나 오랜 세월 회자되고 있다. 

영혼 존재에 대한 갑론을박은 결론 없이 이어진다.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다’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이 많다. 

겨울이면 유행하는 인플루엔자, 동장군이 몰고 온 찬바람, 

손바닥에 득실대는 세균들…. 인간이 가진 시력으로는 그 유무를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는 이들의 존재를 증상이나 증거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인플루엔자의 증상은 열과 몸살, 기침 등이 있으며, 

동장군이 몰고 온 찬바람 또한 피부로 그 증거를 체감할 수 있다.

 손의 세균은 현미경을 통해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영혼의 존재는 어떤 증거로 확인할 수 있을까??.

 성경에서 그 해답을 살펴보자.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생령이란 ‘산 영혼’, ‘산 생명’이란 뜻이다. 

흙이라는 육체 속에 하나님의 생기(영혼)로 사람이 창조됐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살아 있는 사람 모두에게는 영혼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영혼의 존재를 어떤 증거로 확인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의 명쾌한 답이다. 

누구든지 살아 있다면 그것이 바로 영혼의 존재를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숨쉬고, 먹고, 움직이며 살아가는 모든 것, 그것이 바로 사람 속에 

영혼이 존재한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보자. 사람의 몸속에 영혼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왕상 17/22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이 내용은 엘리야라는 선지자가 사르밧 지역에 사는 한 과부를 만나 그의 

죽은 아들을 살리는 장면이다. 이때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아이의 영혼을 몸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말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빠져나온 영혼을 몸으로 

돌려보내 아이를 살아나게 하셨다. 즉 영혼이 몸과 분리되면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몸에 영혼이 없다는 것 자체가 죽었음을 의미한다.

 이를 두고 성경에서는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전 12/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돌아간다’는 의미는 ‘왔던 곳으로 다시 감’을 뜻한다. 

예를 들어 아침에 집에서 나와 학교로 간 아이가 하교 후에 돌아간다면 

어디로 갈까. 다시 집으로 가야 ‘돌아간다’는 말이 성립된다. 

만약 아이가 하교 후 도서관에 들른다면 이는 ‘돌아간다’는 표현을 쓸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죽게 되면 몸과 영혼이 분리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고 

하셨다. 육체는 흙에서 왔기에 땅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으로부터 왔기에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영혼과 육체의 결합으로 살아 있던 사람은, 수명을 다한 후 영혼과 육체의 분리로

 죽게 된다. 이와 관련해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표현하는 습관이 하나 있다.

 예로부터 사람의 죽음에 대해 ‘돌아가셨다’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영혼은 아마도 육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삶과 죽음에 대한 메커니즘을 깨닫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몸을 보호하기 위해 인류는 옷을 지어 입기 시작했다. 

옷은 유구한 역사 속에 변화를 거듭해 갔다. 그리고 명품이라는 브랜드 속에서 

고가의 제품으로 태어나기도 했다. 그렇다고 몸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또한 옷이 아무리 비싸도 저절로 혼자 무엇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벗어 놓으면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는다.

 우리의 몸이 이와 같다. 영혼에서 탈피된 육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존재가 우리 몸이다. 벗어놓은 옷과 같다.

 중요성을 논하자면 옷보다 몸이 중요하듯 

육체보다 영혼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이다.


영혼은 존재한다. 

그 존재를 믿을지 말지는 각자에게 달렸다. 

‘사랑과 영혼’의 몰리처럼 말이다.








성경은 사실이다.




사람이 기록한 성경이므로  믿을 수 없다? 



“우리 몸에 세균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믿으라는 말입니까?

 ‘사람’이 한 말인데….”



객관적인 사실로 기술된 생물학을 본 후에 어떤 사람의 반응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단지‘사람’이 저자라는 이유로 책을 믿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세상의 모든 책과 더불어 동료의 말조차 신뢰하지 못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융통성 없는 사람 혹은 상종 못할 사람으로 

간주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이런 황당한 논리로 성경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은‘사람’이 기록했으므로 믿을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베드로, 바울은 사람인데 어찌 그들의 기록을

믿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은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켰던 

이순신 장군,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를 비롯한 역사의 모든 위인들까지 

거짓이라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나아가 과학서적, 의학서적, 전문서적도 가짜와 허구에 불과한 책이 

되어버립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책들의 저자는 다름 아닌‘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이 사람에 의해 기록한 것이므로 무조건 믿을 수 없다는 

주장에도 이와 같은 오류가 있습니다. 



성경은 믿음의 선지자들이‘하나님께 받아’기록한 책   입니다.
(벧후 1:20). 

가령, 한글을 모르는 할머니가 이웃집의 학생에게 편지를 대신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할머니가 편지 내용을 말하면 학생이 ‘그 말을 받아’ 편지를

 기록하였습니다. 할머니와 학생 중 누가 편지의 저자일까요? 

할머니 입니다. 편지에 할머니의 생각과 말씀이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경도 마찬가지다. 

비록 사람에 의해 기록되었을지라도

 성경에는 하나님의 뜻과 말씀이 기록
되어 있습니다.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의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 (신 18:21~22)




하나님의 말씀에는 반드시 증거가 있습니다. 

예언 성취가 그것입니다. 

지금부터 마음을 열고 성경을 살펴보십시요. 

성경이 정확한 예언 성취의 증거로 기록된

 하나님 말씀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마지막 아담과 안상홍님

모든 사람들이 소망하는 영생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 주어집니다.
성경은 우리게게 영생을 주실 
구원자를 증거하고 알려주는 
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구원자를 발견하고 그 구원자를 통해여 영생을 얻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요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이천 년 전에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들이 어떤 목적으로 성경을 상고해야 
하는가를 알려주신 말씀입니다.
성경이 누구를 증거한다고 하셨습니까?
성경이 내게 대하여 증거한다고 하였는데 여기는 나는 예수님입니다.
즉, 성경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책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오시는 재림 예수님도 성경이 증거합니다.
성경에는 재림 예수님에 대한 많은 예언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마지막 아담으로 표상된 재림 예수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고전 15/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마지막 아담은 우리를 살려주는 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지막 아담이 누구인지 반드시 알아야만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이 말씀에 기록된 마지감 아담은 누구 일까요??


우리를 살려준다면 어떤한 방법으로 살려주겠습니까??
지금부터 이 두가지 문제에 대하여 하나 하나 알아보겠습니다.



마지막 아담은 누구인가??

먼저 마지막 아담이 누구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롬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아담은 누구에 대한 표상이라고 했습니까??
아담은 오실 자에 대한 표상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오실자"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오늘 살펴볼 아담은 마지막 아담입니다.
아담이 예수님에 대한 표상이므로 마지막 아담은 마지막 때 오실 예수님 즉, 
재림 예수님에 대한 표상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살리시는가??

예언적으로 볼 때 마지막 아담이신 재림 예수님께서 오시는 목적
 무엇입니까??
살려주는 영이라고 하였으므로 우리를 살려주기 위해서 오십니다.
마지막 아담이신 재림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어떤 방법으로
 살려주신다고 하셨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요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마지막 날에 어떤 사람들이 영생을 가졌다고 하였습니까??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사람입니다.
마지막 날에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사람만 살려주신다고 하였으므로
 마지막 날에 등장하는 마지막 아담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게 
해주심으로 살려주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살과 피는 어떻게 먹고 마실 수 있습니까??

마26/26~28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받아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예수님께서 유월절 떡을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내몸 즉, 예수님의 살이라고
 하셨습니다.

유월절 포도주는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가??
예수님의 피라고 하셨습니다.

유월절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예식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는 마지막 날에 무엇을 먹고 마시면 살려주신다고 하였습니까??
예수님의 살과 피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날에 우리를 살려주는 진리

 바로 이 유월절입니다.

지금까지 배운 말씀을 정리해보면 마지막 아담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을 살리기 위해서이 땅에 두 번째 오시는 예수님이시며,
반드시 누구나 지키면 살수 있는 유월절 진리를 가지고 오시는 분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성경의 예언을 따라서 유월절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분이 
누구이십니까??
안상홍님 이십니다. 
안상홍님은 성경의 모든 예언을 좇아 이 시대에 마지막 아담으로 등장하신
 재림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를 살려 주시기 위해서 친히 이 땅에 오신 
안상홍님을 영접하시는 축복의 자녀가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