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31일 목요일

성경은 사실이다.




살아있는 성경--- 지구 창조, 그 순간으로


성경을 사실이라고 믿습니까, 라고 물으면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이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조차 성경에 대해 회의적인 모습이다. 



어쩌다 성경이 믿지 못할 책이 됐을까. 

그 이유에 대해 성경은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처럼 하나님의 생각이 사람의 생각보다 높기 

때문에 인간의 눈으론 도저히 하나님의 영역을

 볼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고 알려준다. 

그나마 현대에는 과학이 발달하면서 사람이 

볼 수 있는 영역이 전보다 넓어졌다.

 이로 인해 그동안 이해할 수 없어 허구라고

 생각해왔던 성경의 기록이 사실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1. 지구 창조에 대한 말씀이 그렇다.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 (욥기 26:7) 


고달픈 삶으로 인해 하나님을 잠시 잊었던 욥-마치 우리와 같은 모습이다-에게 

주신 말씀이다. 땅을 공간에 다셨다는 말씀은 지구가 허공에 떠 있다는 뜻이다. 

오늘날에는 과학의 발달로 인공위성에서 찍은 사진과 영상을 통해 누구나 쉽게 

지구가 허공에 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고대 사람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지구가 무엇엔가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언제 사람들이 지구가 허공에 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일까. 바로 17세기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후부터다. 


그러나 성경은 욥기서가 기록된 때, 즉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에 지구가 

허공에 떠 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당시 사람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사실을 성경은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 

이는 성경이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기록이며

 사실이라는 확실한 증거다. 


2. 물의 순환 과정에 대한 말씀도 있다. 


그가 물을 가늘게 이끌어 올리신즉 그것이 안개 되어 비를 이루고 그것이 공중에서

 내려 사람 위에 쏟아지느니라 (욥기 36:27~28) 


이러한 물의 순환 과정을 사람들이 온전히 이해한 때는 다름 아닌 16, 17세기 

페로와 마리오트의 실험결과 최초 확인됐다. 

그러나 성경은 이미 3500년 전 정확히 물의 순환 과정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성경이 과학보다 수천 년 앞서서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성경이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기록이며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성경에는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수많은 사실들이 있다. 

지금 당장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 볼 수 있는 영역은 너무나 좁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깨닫고 좀 더 겸손한 자세로 성경을 

대해야 하지 않을까. 







2013년 1월 30일 수요일

추수감사절은 성경에 근거한 것인가





‘추수감사절’은 영어 Thanks giving day의 번역어로 매년 11월에 대부분의 

개신교에서 지키는 절기다.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영국을 떠나 신대륙(아메리카)에 도착해 

농사를 지어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축제를 

거행했던 데서 기인하며, 축제일로 정한 사람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그 종교의 

예전(禮典)이 있기 마련이다. 

하물며 온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규례와 법도가 없을 리 만무하다.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었듯이, 예수님께서 세우신 새 언약에도 하나님을 

섬기는 예법이 있다(히브리서 9:1~10). 

사도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새 언약의 법도 속에서 하나님을 진실되게 

섬겨왔으나, 점차 진리가 변질되면서 성경 외적인 교리들이 교회 내로 

들어왔다. 그중 하나가 ‘추수감사절’이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추수감사절이 구약의 초실절 또는 초막절과 연관된 절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추수감사절을 지키라고 명하신 적이 

없다.


먼저 구약의 초실절과 추수감사절이 연관이 있는지 살펴보겠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

 십계명을 받고 성막을 짓기까지의 행적을 기념케 하기 위해 7가지 절기를 

정해주셨다. 이는 장차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죄악세상에서 이끌어내시고

 하늘 성전재료를 모으기까지 일어날 일을 예표로 보이신 것이다.


7개 절기 중 세 번째 절기인 초실절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느리고 

홍해를 건넌 것을 기념하여 제정된 절기였다. 

매년 무교절 후 첫 안식일 다음 날-이 시기는 이스라엘의 계절상 봄이었고, 

보리와 밀 이삭이 익을 무렵이었다-에 제사장이 첫 이삭 한 단을 흔들어 제사를

 드렸다(레위기 23:10~14). 그래서 요제절이라고도 부른다.


이는 장차 죽은 자 가운데서 첫 번째 부활하실 예수님을 상징한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첫 열매로 부활하셨으니 이는 구약 때 초실절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고, 구약시대에 무교절 후 안식일 이튿날(일요일) 초실절 제사를

 드렸던 것은 예수님께서 무교절 후 안식일 이튿날(일요일)에 부활하심으로

 성취되었다.



그렇다면 구약의 초실절을 기념해야 하겠는가, 

예수님의 부활절을 기념해야 하겠는가. 

만약 추수감사절을 지키면서 구약의 초실절과 연관시키려 한다면 아직도 자신들이

 구약의 울타리 안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율법을 허시고 새 언약의 규례를 제정해주셨는데 

다시금 쌓으려 한다면 이는 예수님을 대적하여 두 번째 십자가에 못박고자 하는

 행위와 다름없다.


다음으로 구약의 초막절과 추수감사절과 연관이 있는 절기인지 살펴보겠다. 

구약시대의 초막절은 모세 때 광야에서 성막 지을 재료를 모으던 일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것으로 성력 7월 15일부터 22일까지 지켰다(양력으로는 9~10월경).


모세는 시내산에서 본 하늘의 성소를 그대로 지으라는 명령을 백성들에게 전달했고, 

성령에 감동받은 백성들은 자원하여 금, 은, 포목 등 성막 지을 재료를 하나님께 

봉헌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초막절(장막절, 수장절)을 

지키라 명하셨는데, 이때 백성들은 성막 뜰에 초막을 짓고 7일 동안 축제를 즐겼다.

(레위기 23:34~36).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보고 내려와 지은 지상성소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하늘성소의 모형과 그림자라고 기록했다.


(지상 성소에서)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8:5)


모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소 재료를 모았던 역사는 신약시대 하늘 성전재료를

 상징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모을 것에 대한 모형이었다.


이 백성으로 나무가 되게 하리니 (예레미야 5:14)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에베소서 2:20~21)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요한계시록 3:12)


구약시대에 풀이나 나무로 얼기설기 엮어서 초막을 만들어 놓고 그곳에서

 칠일간 거하며 기뻐하고 즐거워했던 의식이나, 모세를 통하여 일주일 동안

 성전 재료를 모으므로써 거룩한 성막을 완성시켰던 역사는 나무 같은 성전재료를

 상징하는 성도들을 모으므로써 완성될 복음사업에 대한 예언이다.


구약의 초실절이나 초막절은 신약시대에 예수님께서 이루실 부활절과

 하늘 성전재료인 성도들을 모으는 초막절의 모형적 역사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추수감사절을 지키면서 구약시대의 초실절이나 초막절을 

인용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추수감사절은 미국의 축제일이지,

하나님의 축제일이 아니다.






생각 그릇 넓히기ㅡㅡㅡ


실행


보리밭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종달새 가족이 있었어요.

어느 날, 엄마 종달새가 아기 종달새들에게 말했어요.

"보리를 추수할 때 우리는 

이사를 갈 거란다."

며칠 후 보리밭 주인이 

말했어요.

"보리가 다 자랐으니 이웃들에게 추수를 부탁해야겠다."

아기 종달새들은 깜짝 놀았어요.

"엄마 ! 얼른 이사 가요!"

"아직은 아니야. 괜찮단다."

다음 날, 보리밭 주인은 또 말했어요.

"빨리 추수해야겠네. 친구한테 부탁해야지."

아기 종달새들이 걱정스런 얼굴로 엄마 종달새를 

바라보았어요.

엄마 종달새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어요.

"아직 아니란다."

며칠이 지나 보리밭 주인이 말했어요.

"안되겠다. 내가 추수해야겠어!"

그때 엄마 종달새가 말했어요.

"이제는 틀림없구나, 애들아, 어서 이사 가자."


예언이 이루어짐을 보고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직후, 글로바와 또 한 제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것에 낙심하여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고 있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가오셨으나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너희가 지금 서로 하고 있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예루살렘에 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게 무엇이냐?"

"나사렛 예수의 일이지요.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였는데,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믿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여자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분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천사를 만나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몇몇 제자들도 무덤에 가 봤지만 역시 예수님의 시체를 보지 못했답니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아!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예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자신이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을 다 이루셨음을  

자세히 설명하신 후, 축사한 떡을 제자들에게 떼어 주셨다.

그제야 예수님을 알아본 두 제자는 서둘러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예언을 알고만 있는 자와 그것을 믿는 자.

이 둘의 차이는 예언이 눈앞에 현실로 이뤄졌을 때 확연하게 드러난다.

예언을 알고만 있는 자는 성취됨을 목도하고도 그것이 예언대로 이뤄진 일인지조차 

닫지 못한다.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을 알고 또 예수님의 행적을보고 들었음에도 

예언과 성취를 연결하지 못해  그저 제 갈 길로 행했던 두 제자처럼 말이다.

하지만 예언을 믿는 자는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예언과 그 성취를 발견한다.

그렇기에 항상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그 예언의 행보에 발맞추고자 노력하게 된다.


예루살렘의 자녀들이 원방에서 구름같이 비둘기같이 날아오고,

 열방이 열왕들이 예루살렘의 광명으로 

나아오며, 

새 이름과 하늘 어머니를 찬양하는 

새노래가 온 땅에 울려 퍼지는 놀라운 

역사를 목도하는 이 시대 

(사60/1~11, 시40/3, 사96/1).

성경의 예언이 현실로 이뤄짐을 실감하고 그에 발맞춰 

나아가는 자들은 분명 예언의 한 자락을 담당하는 

축복과 하늘의 큰 상급을 허락받을 것이다.





2013년 1월 29일 화요일

성부, 성자, 성령은 한 분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 성삼위는 한 분이시다. 

이를 두고 성삼위일체(聖三位一體)라 한다. 

기독교의 기본적 교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성삼위일체를 

믿지 않고 있다. 

그들이 믿는 것은 ‘오직 예수’뿐이다. 

그들이 진정 성삼위일체를 믿는다면 성경에 등장하는 

새 이름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다. 

성삼위일체의 이해를 돕기 위해 ‘물’을 생각해 보자. 

수소와 산소의 화학적 결합물인 액체, 물은 0℃ 이하에서는 

얼음이 되고 

100℃ 이상에서는 

수증기가 된다. 

이렇게 물은 얼음, 

수증기처럼 모양과

 이름이 달라도 

그 분자인 H2O는

 변함이 없다. 

성분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부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으로, 

성령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새 이름’으로

 육체를 입고 나타나셨지만 

그 근본은 하나님이시다. 

각 시대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다른 모습으로, 

다른 이름을 가지고 오셨을 뿐이다. 

이런 사실을 믿는 것이 바로 성삼위일체에 대한 올바른 믿음이다. 

더 이상 ‘오직 예수’로는 구원이 없다. 

지금은 성령시대이고 성령시대에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새 이름’을 믿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2013년 1월 28일 월요일

창세기에 증거되어 있는 어머니 하나님




제가 어렸을대 장로교회을 다녔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서 들은 기억이 나네요.
하나님은 중성이라고 들었었어요.. 
반은 남자..........그리고 반은 여자....라고요.
처음에는 그 말이 너무 웃기다고 생각했었죠. 어떻게 반으로 
나뉘어서 반은 남자이고 반은 여자라고 하는지....
그런데 성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더라구요.


창 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 을 따라 우리의 모양 대로 우리가 사람을만들고.................

하나님이 자기의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여자 를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때 분명히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하나님의 형상에는 두분 형상의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모든 기독교인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은 한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은 남자, 여자인데...

하나님은 한분 하나님만 알고 있고..........
그러니 하나님의 형상은 반은 남자, 반은 여자라는 말이 
나올수 밖에요.....

그렇게 하나님의 형상은 반은 남자, 반은 여자일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는날 저의 언니가 이야기을 하더라구요...
하나님은 두분 하나님으로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 
계시다고요...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릴때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서 들었던 말이 생각이 나더라구요...



아~~~~~~~~~~~~~ 이거였구나.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뿐만이 아니라 어머니 하나님도 계시구나....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통해서도 어머니 하나님이 계심을 
알려 주셨습니다.
.


롬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 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천국은 보이지 않는 세계이기에 보이는 만물의 이치를 통해서

 알려 주셨습니다.


만물만 보더라고 어머니 하나님이 계심을 누구나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버지 하나님으로 믿고 있는것은 
남자 형상의 하나님을 눈으로
보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증거하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기에 하나님을 눈으로 본적은 없지만 

모든 기독교인들이 아버지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아버지 하나님을 증거하는 성경이 어머니 하나님이 

계심을 증거 하고 있습니다.


갈 4:26 오직 위에 있는예루살렘은 자유자니 우리 어머니라.


어머니 하나님은 분명히 계십니다.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형상을 보아도..........
만물을 통해서 보아도...........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성경을
 통해서 보아도
어머니 하나님은 반듯이 계십니다.

성경의 예언을 보면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는 구원의 
마지막 시대에 나타난다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에는 다 때가 있고, 때가 되기 전에는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는
성경 속 감춰진 비밀 이었습니다.

여지껏 감춰진 비밀로 계시던 어머니 하나님이 오셨기에 지금 
전 세계에서는 특종으로 보도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만 해도 언론사로 유명한 "월간중앙", "조선일보"에서도
어머니 하나님에 대한 특종 기사 로 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나라에서도 앞다투어 어머니 하나님이 오셨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2011년 11월에는 영국의 권위 있는 BBC라디오 방송에서 생방으로
 "많은 사람이 '아버지하나님'은 드러보았을 텐데 '어머니 하나님'은 
들어 봤는가? 하나님의 교회는
여자 형상의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믿을 뿐 아니라 그분이 살아계시고
 한국에 계시다고 믿는다"는 내용으로 방송.

2012년 2얼에는 멕시코방송국 텔레비사 에서 아침뉴스 
""아버지 하나님은 계신데 왜 '어머니 하나님'은 안 계실까?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 두 분으로
계신다는 특별한 소식이 한국에서 우리나라까지 전해졌다"는 방송

2012년 5얼14일에는 미국 시카고의 Channel5방송 에서 시카고 
하나님의 교회를 직접 찾아가 이 교회에서 믿는 
"어머니 하나님"에 대해 보도 하기도 했지요...^^

"최근 세계 언론사 뉴스의 초점이 성도들의 선행에서 그들에게 
선한 가르침을 준 '어머니'에게로 점차 옮겨가고 있다.
 성도들이 세계 곳곳에서 벌이는 열정적인 전도와 헌신적인 봉사로
 각국에서 '어머니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월간중에서도 보도을 했어요.

만약 어머니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이렇게 전 세계에서 방송으로
 어머니 하나님이
계시다는 방송을 보낼수 있을까요??????????????

그 모든 방송국들이 직접 교회에 찾아와서 성경을 통해서 확인하고
 제 3자의 입장에서 보고, 듣은 것을 기사로 방영하는 것입니다.

어머니 하나님은 정말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친히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해외에서도 어머니 하나님을 뵐려고 달마다 한국으로 방문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성경을 기준으로 보고 알아보았기 때문에 어머니 하나님을 
영접을 했습니다.

어머니 하나님을 지금도 전 세계에서 전하고 있습니다.



2013년 1월 26일 토요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보여주면 믿겠다!”

무신론자 혹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라 하면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을 보고 

믿음을 갖는 경우는 없습니다.

 삼라만상을 보고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이도 있고, 

성경의 무오성과 완전함에 

하나님을 믿게 된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보지 않고도 이미 

하나님의 존재를 믿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도마에게 

고난의 상처를 만져보게 하시고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에 대해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증거’라고 

표현했습니다. 

실제, 눈으로 보는 것은 ‘확인’일 뿐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영혼





사람과 영혼


나는 누구인가 !!  나는 무엇인가 !!

인류 최대의 의문, 

수많은 철학자들을 탄생시킨 질문, 

인간의 근원적이고 존재론적인 

문제에 답을 던지다.




샘이 죽은 후 몰리는 혼자였다. 

잦아지는 그리움에 슬픔이 복받쳐도 위로해줄 사람이 없었다. 

그와 함께했던 소파에 앉아 샘을 그리워하던 몰리에게 한 사람이 찾아왔다. 

오다메였다. 그리고 몰리는 깨닫게 된다.

 샘이 영혼의 상태로 자신의 주위를 맴돌고 있음을. 


1990년, 전 세계적으로 대히트를 쳤던 영화 ‘사랑과 영혼(Ghost)’의 한 장면이다.

 전반부의 안타까움이 절정에 다다를 즈음 이 장면에 이어 몰리는 

결국 샘을 만나게 된다. 오다메 속에 들어온 샘의 영혼과의 재회는 

보는 이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영화 '사랑과 영혼'의 한 장면 



하지만 우리는 이 영화에서 차마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날 수 없었던 

샘의 영혼이 던지는 메시지보다 ‘사람에게 과연 영혼이라는 것이 존재할까?’라는

 의문을 더 가지게 된다. 

과연 영혼이라는 것은 존재할까?

영화에서 샘의 영혼은 몸을 벗어나 활동하며, 눈으로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존재로 설명된다. 

물론 영화는 픽션(fiction)이다. 

그러나 영화의 소재인 영혼은 논픽션(nonfiction)이다.


사람의 영혼에 대한 문제는 종교를 떠나 오랜 세월 회자되고 있다. 

영혼 존재에 대한 갑론을박은 결론 없이 이어진다.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다’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이 많다. 

겨울이면 유행하는 인플루엔자, 동장군이 몰고 온 찬바람, 

손바닥에 득실대는 세균들…. 인간이 가진 시력으로는 그 유무를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는 이들의 존재를 증상이나 증거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인플루엔자의 증상은 열과 몸살, 기침 등이 있으며, 

동장군이 몰고 온 찬바람 또한 피부로 그 증거를 체감할 수 있다.

 손의 세균은 현미경을 통해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영혼의 존재는 어떤 증거로 확인할 수 있을까??.

 성경에서 그 해답을 살펴보자.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생령이란 ‘산 영혼’, ‘산 생명’이란 뜻이다. 

흙이라는 육체 속에 하나님의 생기(영혼)로 사람이 창조됐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살아 있는 사람 모두에게는 영혼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영혼의 존재를 어떤 증거로 확인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의 명쾌한 답이다. 

누구든지 살아 있다면 그것이 바로 영혼의 존재를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숨쉬고, 먹고, 움직이며 살아가는 모든 것, 그것이 바로 사람 속에 

영혼이 존재한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보자. 사람의 몸속에 영혼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왕상 17/22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이 내용은 엘리야라는 선지자가 사르밧 지역에 사는 한 과부를 만나 그의 

죽은 아들을 살리는 장면이다. 이때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아이의 영혼을 몸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말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빠져나온 영혼을 몸으로 

돌려보내 아이를 살아나게 하셨다. 즉 영혼이 몸과 분리되면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몸에 영혼이 없다는 것 자체가 죽었음을 의미한다.

 이를 두고 성경에서는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전 12/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돌아간다’는 의미는 ‘왔던 곳으로 다시 감’을 뜻한다. 

예를 들어 아침에 집에서 나와 학교로 간 아이가 하교 후에 돌아간다면 

어디로 갈까. 다시 집으로 가야 ‘돌아간다’는 말이 성립된다. 

만약 아이가 하교 후 도서관에 들른다면 이는 ‘돌아간다’는 표현을 쓸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죽게 되면 몸과 영혼이 분리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고 

하셨다. 육체는 흙에서 왔기에 땅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으로부터 왔기에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영혼과 육체의 결합으로 살아 있던 사람은, 수명을 다한 후 영혼과 육체의 분리로

 죽게 된다. 이와 관련해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표현하는 습관이 하나 있다.

 예로부터 사람의 죽음에 대해 ‘돌아가셨다’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영혼은 아마도 육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삶과 죽음에 대한 메커니즘을 깨닫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몸을 보호하기 위해 인류는 옷을 지어 입기 시작했다. 

옷은 유구한 역사 속에 변화를 거듭해 갔다. 그리고 명품이라는 브랜드 속에서 

고가의 제품으로 태어나기도 했다. 그렇다고 몸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또한 옷이 아무리 비싸도 저절로 혼자 무엇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벗어 놓으면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는다.

 우리의 몸이 이와 같다. 영혼에서 탈피된 육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존재가 우리 몸이다. 벗어놓은 옷과 같다.

 중요성을 논하자면 옷보다 몸이 중요하듯 

육체보다 영혼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이다.


영혼은 존재한다. 

그 존재를 믿을지 말지는 각자에게 달렸다. 

‘사랑과 영혼’의 몰리처럼 말이다.








성경은 사실이다.




사람이 기록한 성경이므로  믿을 수 없다? 



“우리 몸에 세균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믿으라는 말입니까?

 ‘사람’이 한 말인데….”



객관적인 사실로 기술된 생물학을 본 후에 어떤 사람의 반응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단지‘사람’이 저자라는 이유로 책을 믿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세상의 모든 책과 더불어 동료의 말조차 신뢰하지 못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융통성 없는 사람 혹은 상종 못할 사람으로 

간주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이런 황당한 논리로 성경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은‘사람’이 기록했으므로 믿을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베드로, 바울은 사람인데 어찌 그들의 기록을

믿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은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켰던 

이순신 장군,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를 비롯한 역사의 모든 위인들까지 

거짓이라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나아가 과학서적, 의학서적, 전문서적도 가짜와 허구에 불과한 책이 

되어버립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책들의 저자는 다름 아닌‘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이 사람에 의해 기록한 것이므로 무조건 믿을 수 없다는 

주장에도 이와 같은 오류가 있습니다. 



성경은 믿음의 선지자들이‘하나님께 받아’기록한 책   입니다.
(벧후 1:20). 

가령, 한글을 모르는 할머니가 이웃집의 학생에게 편지를 대신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할머니가 편지 내용을 말하면 학생이 ‘그 말을 받아’ 편지를

 기록하였습니다. 할머니와 학생 중 누가 편지의 저자일까요? 

할머니 입니다. 편지에 할머니의 생각과 말씀이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경도 마찬가지다. 

비록 사람에 의해 기록되었을지라도

 성경에는 하나님의 뜻과 말씀이 기록
되어 있습니다.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의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 (신 18:21~22)




하나님의 말씀에는 반드시 증거가 있습니다. 

예언 성취가 그것입니다. 

지금부터 마음을 열고 성경을 살펴보십시요. 

성경이 정확한 예언 성취의 증거로 기록된

 하나님 말씀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